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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가을비

 

또 한번 삶의 간이역을 지나는 길목에서

세월의 바람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여름

뜨거운 심장의 고동소리로 그리움하나 만나면 좋겠다.

그리움을 나누는 사람들이 날마다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서듯

나도 누군가의 가슴을 열고 조금씩, 조금씩 들어서고 싶다 한번쯤은 만나보고도 싶다.

 

가까이서 그리움의 숨소리를 듣고 싶고 세월 찐득하니 묻은 거친 얼굴을 마주하고

세상 제일 편안한 미소로 반겨 맞으면 따뜻한 마음이 혈관 속으로 스며들 것도 같다.

 

사랑이 아니어도 좋다.

작은 그리움이라도 되어 오늘 하루가 행복 할 수 있다면 말없이 그저 바라만 봐도 좋겠다.

거울 앞에서면 늙어가는 세월이 씁쓸히 반겨 웃고 있지만

마음속의 거울은 가슴 두근거리는 설레임 ...

그래서 마음은 비오는 거리를... 숲길을... 바다를 헤매 인다.

 

바람 향기 그윽한 숲길을 산책하다 혹은 물새 발자욱 따라 바닷가를 거닐다

풀 섶에 숨은 밤알이나 도토리를 줍듯, 파도에 밀려온 이뿐 조개껍질을 줍듯,

여름 장마 비처럼 퍼 붙는 가을빗속을 뛰다 오랫동안 소식 끈긴 반가운 친구를 만나듯

순전한 환희로 빛나는 그리움하나 만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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