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나는 연병장을 헉헉대며 도는 꿈을 꾸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나는 완전군장을 한체 반시계 방향으로만 돌고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을 내려다 보며 고함을 쳤다. 「너는 왜 반대로만 도는거야 ? 세상은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게 순리인데 넌 왜 반시계 방향으로만 도느냐고 ?」 나는 어정쩡하게 나를 올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어느 누구도 시계방향으로 운동장을 돌수는 없어... 이게 규칙이야 !! 」. 그러나 나는 정말 그런 규칙을 누가 내게 지시했는지 모른다.그러나 언제나 우리는 반시계 방향으로 운동장을 돌지 않았는가 ! 올림픽에서 조차도.. 그러나 왜 반시계 방향으로만 돌아야 하는지는 모른다. 「깨셨어요 ?」 나는 형광등을 신문지로 가려 내쪽으로는 어둡게한 맞은편으로 Y가 단정히 책상에 앉아서 나를 비스듬..
평일이기도 하지만 오전 나절을 막 지나서인지 공원은 쓸쓸하리만큼 인적이 드물었다. 나는 녹음이 짙어진 공원길을 그와 나란히 걸으며 이런 저런 말들을 이어나갔다. 박은 사람좋은 미소를 섞어가며 진심인지 푸념인지 모를 말들을 중얼거렸다. 「버터와 김치 냄새가 믹스된 나의 현실에 자주 의문표를 던지게 되네...미군들과 같은 군복을 입고 미군들과 같이 훈련을 받으면서 내가 상대해야할 적들이 누구인지 문득 문득 헷갈려....우린 같이 자라왔지만 너는 국군이고 나는 미군으로 포장되어있고... 」 나는 대답할 마땅한 말을 찾기 어려웠다.나도 나의 정체성에 대하여 의문이 들때가 많다. 특히 우리 세대에 이상하게도 민감하게 다가오는 정치판의 행태는 더욱 의문 투성이로 비쳐진다. 정권 교체기마다 요란하게 치뤄냈던 민주화니..
젊은날의 초상 아득한곳으로부터 나지막하지만 규칙적으로 그르렁거리는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번쩍이는 검은 철모를 눈썹이 보이지 않도록 눌러쓰고 어깨에 흰 휘장을 내려뜨린 두명의 건장한 헌병이 소총을 빗겨 두른체 절벅거리며 차안을 올라서는 것을 잠시 어색하게 보고 있었다. 구리빛으로 검게 그을린 헌병이 버스 앞쪽에서 절도있게 경례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불현듯 내가 푸른 제복의 군인이며 말단 휴가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창밖 가로수 사이로 철정검문소라는 명패를 스쳐보면서 나는 잠을 떨구어 내듯 자세를 반듯이 하며 습관처럼 우측손을 상의 주머니에 넣어 네모로 반듯하게 접어놓은 휴가증을 꺼내었다. 군데군데 군모를 눌러쓰고 잠을 자던 군인들도 다소 긴장하면서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잡았다. 부대를 출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