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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갈은구곡 계곡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갈론 주막 주차장 ~ 행운민박 안쪽 계곡 ~ 배티골 ~ 매바위 ~ 아가봉 ~ 사기막재 ~

옥녀봉 ~ 갈은구곡 ~ 갈론 주막 주차장

(약 9km, 7시간 소요, 점심식사 및 계곡 물놀이 등 포함)

 

 

오늘이 음력으로 7월 7일인 칠월칠석날입니다.

올 여름의  가장 무더운 시간을 지나고 있고요.

하여 괴산에 숨어있는 계곡인 갈론 구곡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갈은구곡이 있는 갈론(갈은) 마을은 벽초 홍명희의 조부 홍승목과 국어학자 이능화의 부친인 이원극이 은둔생활을 보냈고

구한말 칼레 신부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든 곳으로 칡뿌리를 양식으로 은둔하기 좋다는 뜻의 마을입니다.

 

갈론 마을은 괴산댐을 지나 약 4km정도의 좁은 길을 들어가야 나옵니다.

지난 겨울 다녀온 괴산 산막이 옛길(http://blog.daum.net/sannasdas/13389710)의 달천천 건너편이지요.

원래 입구에 있는 행운 민박에서 걷기를 시작해야 하나 피서철 주차 등의 문제로 이곳 갈론 주막 식당에 주차를 합니다.

 

과거에는 잘 알려지지않은 오지 마을이었으나

괴산 산막이 옛길이 생기는 바람에 근처에 있는 이곳도 더욱 많이 알려지는 것 같습니다.

 

아가봉이나 옥녀봉을 가기위해서 행운민박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과거에는 파란 지붕이 있는 최씨네 농가였는데 지금은 관광객이 많이 와서인지 민박으로 바뀌었네요.

 

민박 뒤쪽으로 계곡이 있고

본격적인 산행은 이 돌다리를 건너면서 부터이지요.

 

배티골이라 불리는 이 계곡 길은 사람들이 그리 다니지 않아서인지

풀이 우거지고 길도 희미해진 곳이 많더군요.

 

무성한 숲을 따라 계곡 이리 저리 건너면서 길을 걷습니다.

 

나비 한마리가 마치 하얀 잎처럼 보입니다.

가까이 가도 꿈쩍않고 있네요. ㅎㅎ

 

그나저나 이 계곡은 비가 많이 오면 길을 따라 걷기가 어렵겠더군요.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숲길을 걸으니 날은 무더워도 기분은 상쾌합니다.

 

때론 계곡을 벗어나 참 포근한 숲길을 걷기도 하네요.

 

오후에 옥녀봉을 넘어 갈론 계곡으로 가겠지만

그냥 이곳 배티골 계곡에서 놀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도 없어 한적하고 물도 무척이나 깨끗하니 전용 계곡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오늘 가야할 길이 있기에 계곡을 더 이어걷는데

오른편으로 아가봉으로 가는 이정표가 나오고 사기막재로 이어지는 계곡길은 탐방로 아님이라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아가봉과 옥녀봉 사이 고갯길인 사기막재로 바로 오르는 지름길이었는데요.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여름의 대표 야생화인 원추리꽃이 노란 얼굴로 반겨주네요.

 

오랜만에 해보는 등산인지라 힘은 들지만 그래도 주변에 비학산 모습도 보이고 참 좋네요.

 

비학산(841m)은 갈론 마을의 바로 북쪽에 있는 산입니다.

 

능선에 가까워 질 수록 길은 경사가 급해지지만

그래도 오늘은 산을 따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있어 참 좋습니다.

이 소나무는 큰 기둥은 멀쩡한데 옆에 있는 기둥만 썩어가는지 모르겠네요.

 

ㅎㅎ 나뭇가지에 돌을 올려놓은 사람들의 장난기도 재미나지요.

나뭇가지가 작아 돌을 올리기도 쉽지않았을것 같은데요.

 

가파른 길을 올라 주능선에 도착해서 다시 왼편 능선 길로 내려섭니다.

비록 500여 미터에 볼과한 산이지만 아가봉을 거쳐 옥녀봉을 가기위해서는

최소 3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합니다.

 

능선을 걷다 조망이 트여 뒤돌아보니 지나온 봉우리가 한눈에 나타납니다.

산 능선 길을 걸을 때면 가끔 느끼는거지만 지나온 산봉우리를 뒤돌아봄의 매력이 있지요.

산을 오를 때는 그 봉우리가 보이지 않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아 내가 넘은 봉우리가 저 모습이었구나 하고요.

어쩌면 우리 삶도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내가 살아온 모습도 저렇겠구나 하겠지요.

 

오늘 가야할 옥녀봉도 좌측으로 보입니다.

산행에서도 가야할 목적지가 있으면 발걸음이 편해지듯이

인생 또한 마음에 이런 목적지가 있다면 삶이 그다지 고달프지는 않겠지요.

 

바로 앞 옥녀봉 능선 너머로 군자산에서 남군자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바라보입니다.

 

또한 왼편 비학봉너머 군자산과 도마재의 모습도 시원하게 펼쳐지고요.

오랜만에 산에 올라서인지 주변 산 능선 조망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산능선을 따라 바람은 무척이나 시원하게 불어주고

지나는 길 군데 군데 노란 원추리꽃도 피어있어 한들 한들 걷습니다.

가파르고 힘든 길일지라도 바로 앞에 내딜 한걸음만 생각하면 그 길이 힘들지는 않게 느껴지네요.

 

그나저나 참 오랜만에 찾아보는 괴산의 산입니다.

과거에 산행을 주로 다닐때는 최소 한달에 한번 정도는 꼭 괴산에 있는 산을 찾은 적도 있었지요.

 

아름다운 소나무와 시원한 조망 그리고 멋지고 기기묘묘한 바위가 있는 것이

괴산에 있는 산의 특징이지요.

 

이 바위는 마치 물개 모양을 하고 서편 운교리 쪽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 괴산의 산 특징 중 또 하나는 밧줄인데 빼먹었네요. ㅋㅋ

 

밧줄이 있다는 것은 주변에 웅장한 바위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저 평범하게 보이지만 바위 틈사이로 고고하게 자라는 소나무를 보면

참 자연이 경이롭고 생명의 소중함을 새롭게 느낍니다.

 

아가봉의 랜드마크인 매바위에 도착했습니다.

 

바위 윗 부분이 매의 머리를 닮았다해서 매바위라 이름하는 것 같지요.

 

보는 모양에 따라 바위의 모습은 시시각각 변하는 것 같습니다.

 

매바위 옆으로 오르는 길이 있어 올라 가보니 매바위가 시원한 조망과 함께 나타납니다.

 

이곳 조망처에 오르니 지나온 길에서 본 물개 모습의 바위도 보이고요.

 

매바위를 지나 가파른 길을 좀더 오르니 아가봉(雅佳峰, 541m) 정상이 나옵니다.

정상의 모습은 평범하지만 주변 풍경은 산 이름처럼 참 곱고 아름답네요.

갈론 주막에서 이곳까지 약 4km 거리이며 중간에 휴식을 포함하여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네요.

 

아가봉 정산 주변에서 오늘 함께한 회원님들과 여유롭게 맛난 식사도 하고 다시 옥녀봉을 향해 길을 걷습니다.

재미난 바위도 계속 만나게 되고요.

 

밧줄을 타고 수직 절벽길도 내려섭니다.

요즘은 등산보다는 길걷기를 주로 하기에

참 오랜만에 해서인지 더욱 재미가 있더군요.

 

산 능선을 타고 가기에 군데 군데 시원한 조망은 계속 나타납니다.

오른편 바위 아래쪽 모습이 마치 돌고래가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옆 얼굴처럼 보이지 않나요. ㅎ

 

이 바위는 2개의 괴물 옆 얼굴 모습을 포개여 놓은것 같고요.

여튼 참 재미난 자연의 모습입니다.

 

어린 영지 버섯을 만났네요.

보통 영지 버섯은 나무에 기생하며 자라는 것으로 아는데 이처럼 흙에서 자라는 것은 처음 봅니다.

 

아가봉을 내려서서 주변에 하얀 버섯이 줄지어 자라고 있는 사기막재에 도착합니다.

배티골에서 바로 오르면 이곳 고개로 오게 되지요.

 

이제 다시 가파른 능선 길을 따라 옥녀봉으로 오릅니다.

이 소나무는 남은 기둥이 그대로 있었다면 참 거대하고 멋진 모습일것 같은데

무슨 이유로 이리 기둥이 잘려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가파른 길을 올라 옥녀봉(599m)에 도착했습니다.

600m에 딱 1m모자라는 높이네요.

하긴 꽉차는 것보다는 조금 비어있는 숫자가 더욱 느낌이 좋아보입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땀에 젖은 몸도 식히고 나서

이제 갈론 계곡을 향해 하산을 시작합니다.

주변 소나무 풍경이 무척이나 멋지네요.

 

멋진 소나무 가지 사이로 펼쳐지는 연두 빛의 소나무 잎들이 참 곱고요.

은은하고 고운 빛의 풍경을 보니

문득 도종환 시인의 "은은함에 대햐여"라는 시가 생각이 납니다.

 

은은하다는 말 속에는 아련한 향기가 스미어 있다

은은하다는 말 속에는 살구꽃 위에 내린

맑고 환한 빛이 들어 있다

강물도 저녁 햇살을 안고 천천히 내려 갈 땐

은은하게 몸을 움직인다

달빛도 벌레를 재워주는 나뭇잎 위를 건너갈 땐

은은한 걸음으로 간다

은은한 것들 아래서는 짐승도 순한 얼굴로 돌아온다

봄에 피는 꽃 중에는 은은한 꽃들이 많다

은은함이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 꽃길을 따라

우리 남은 생도 그런 빛깔로 흘러갈 수 있다면

사랑하는 이의 손잡고 은은하게 물들어갈 수 있다면

 

 

옥녀봉을 내려서니 4거리 갈림길에서 능선길을 버리고 왼편 계곡 방향으로 내려섭니다.

물론 직진하면 남군자산으로 가는 출입통제 지역이며 오른편으로는 사랑산이 있는 사기막으로 내려서는 길입니다.

오늘은 갈론 마을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원점 회귀 코스가 되네요.

 

조용하고 한적한 숲 계곡 길을 내려서니 갈은 구곡이 시작되는 갈론 계곡이 나옵니다.

갈은구곡은 갈론 계곡에 있는 9개의 시가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괴산의 유림 전덕호 선생이 구곡마다 시를 암각해 놓았다고 추즉한다네요.

 

먼저 갈은구곡의 제 9경인 선국암을 만납니다.

커다란 바위위에 바둑판이 새겨져 있지요.

또한 바둑판 네 귀퉁이에는 4명의 동갑내기 노인들이 바둑을 즐겼다는 뜻의

 四老同庚(사로동경)이란 글씨가 음각돼 있습니다.

오늘은 실감나게 실제 바둑알도 함께 있는데 바둑은 아니고 오목이네요. ㅋㅋ

 

그리고 바둑판 주변에 이제는 희미해졌지만 시구가 새겨져 있어 집에 와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시입니다.

 

옥녀봉두일욕사(玉女峰頭日欲斜), 잔기미료각귀가(殘棋未了各歸家),

명조유의중래견(明朝有意重來見), 흑백도위석상화(黑白都爲石上花)

 

옥녀봉 산마루에 해는 저물어가건만, 바둑은 아직 끝내지 못해 각자 집으로 돌아갔네,

다음날 아침 생각나서 다시 찾아와 보니, 바둑알 알알이 꽃 되어 돌 위에 피었네

 

 

드디어 시원하고 멋진 계곡에서 알탕을 시작합니다. ㅋㅋ

오전부터 지금까지 무덥고 힘든 산길을 걸으면서 오직 이 시간만을 생각했지요.

 

갈은구곡의 제일 끝 부분이라 그런지 계곡도 좋고 물도 참 깨끗합니다.

8곡이 칠학동천인데 저도 한마리 학이 되어 물놀이를 즐겨봅니다.

 

이처럼 시원하고 좋은 계곡은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라고

 자연이 인간에게 준 참 고마운 선물이겠지요.

차가운 물에 산행에 더워진 몸을 담그고 있으니 신선이 된 기분입니다. ㅎㅎ

 

몇일이라도 이곳에 머물며 여름을 지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제 돌아가야할 시간이네요.

다시 계곡 아래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노송 아래로 흐르는 물가에 지은 집이라는 뜻의 7곡 고송유수재(古松流水齋), 바위가 거북을 닮은 6경 구암(龜岩), 

암벽이 비단 같은 5곡 금병(錦屛)을 따라 계곡을 이어갑니다.

 

물론 하나 하나 글자가 새겨진 곳을 굳이 찾아보지는 않아도 그저 계곡 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입니다.

보물찾기하듯이 그 구곡들을 찾아볼 수 도 있겠지만

오늘은 그저 계곡 물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녹음과 함께하는 기분을 더 느끼고 싶기 때문이네요.

 

구슬 같은 물방울이 흘러내린다는 제 4곡인 옥류벽(玉溜壁)에 도착했습니다.

 

넓은 소와 시루떡처럼 생긴 바위가 층을 이루고 있지요.

 

3m 높이의 암벽이 길게 이어져 있는 풍경이 무척 이색적이며 장관입니다.

 

옥류벽을 빠져나가니 비학산이 바라보이고 시원한 하늘이 나타납니다.

숲길만을 걸어서인지 푸른 하늘이 오랜만인것 같네요.

 

이제 오늘 걷는 길도 거의 마무리가 되는 시간인것 같습니다.

자연에서 만나는 풍경은 언제 보아도 사랑스럽지요.

 

이름 없는 언덕에 기대어 한 세월 살았네
한 해에 절반쯤은 황량한 풍경과 살았네
꽃은 왔다가 순식간에 가버리고
특별할 게 없는 날이 오래 곁에 있었네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풍경을 견딜 수 있었을까
특별하지 않은 세월을 특별히 사랑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많은 들꽃 줄에 한 송이 꽃일 뿐인
너를 깊이 사랑하지 않았다면

 

                                                     < 도종환 시인 - 풍경>

 

 

갈론계곡과 다래골이 만나는 3곡인 강선대에 도착했습니다.

 

이곳부터는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제법 북적이더군요.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자연의 풍광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주변이 멋진 바위 협곡으로 둘러쌓여 있어 새로운 별천지에 들어온 기분이라고 할까요.

 

계곡 물길쪽으로 제2곡인 갈천정(葛天亭)도 있습니다.

 갈천 성을 가진 사람이 은거했던 곳으로 갈론마을 지명의 유래가 된 곳이지요.

 

그리고 입구쪽에 갈론구곡의 제 1곡인 갈은동문이 펼쳐집니다.

계곡옆으로 거대한 바위가 병풍처럼 들어선 모습이 마치 갈은계곡을 보호하기위한 성벽처럼 보이네요.

 

옛날에 이곳에 몇십명이 들어갈만한 동굴이 있었다고 하는데

빨치산이 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동굴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갈론구곡의 9곡부터 1곡까지 전부 지나왔네요.

갈은동문을 빠져나가는 느낌이 마치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듭니다.

 

차량으로 붐비는 차량 통제선도 지나고요.

주변에 있는 산막이 옛길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서인지

작년부터인가 이곳도 여름 피서객들이 무척이나 늘어난 것 같습니다.

 

과거 분교였던 곳이 마을에서 운영하는 생태 학습장으로 바뀌어 운영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갈론 마을로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오늘 걷기는 약 9km를 걸었는데 전체 시간은 7시간 정도가 걸렸네요.

아마도 산이 제법 험하고 또한 계곡이 너무 좋아 물놀이가 길어져서인가 봅니다.

 

오늘 찾아본 갈론 마을은 도로공사에 여름 피서객 주차 때문인지 

한가하고 호젓한 과거에 비해 어수선하고 붐비는 시골 마을이 되었지만

그래도 보물같은 계곡과 주변에 멋진 산들을 숨기고 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골골이 새긴 명시가 있는 갈은 구곡...

오래 오래 아름답게 보존이 되었으면 하네요.

출처 : 준돌의 걷기 그리고 풍경 이야기
글쓴이 : 준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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